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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비딸 (좀비, 가족, 성장)

by skybinja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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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원작의 애니메이션 영화 ‘좀비딸’은 흔한 좀비물의 공포나 스릴 대신, 유쾌함과 감동을 앞세운 색다른 가족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좀비가 되어버린 딸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한 아빠의 이야기. 기존 좀비 장르에서 보기 힘든 정서와 메시지를 담아낸 이 영화는 인간성과 가족애에 대해 재치 있게 되묻는다. 웹툰 특유의 병맛 코드와 한국적 감성이 살아 있는 ‘좀비딸’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새로운 방식의 좀비 가족극을 완성해 낸다.

좀비 – 웃기지만 슬픈, 신개념 좀비 가족극

‘좀비딸’은 제목부터 강렬하다. 딸이 좀비가 됐다는 설정은 다소 엽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 설정을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풀어낸다. 주인공은 어느 날 좀비 바이러스 사태로 아내를 잃고, 딸도 감염되어 좀비가 되어버린 아버지. 하지만 그는 딸을 죽이지 않고 지하실에 감금한 채, 치료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딸은 사람을 물려고 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며 점점 괴물처럼 변해가지만,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딸이 좀비라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아빠. 영화는 여기서 감동의 코드가 시작된다. 좀비가 된 딸을 돌보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무섭지만, 슬프고, 웃기지만 뭉클하다. 이런 상반된 감정이 ‘좀비딸’이라는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가족 – 좀비가 되어도 딸은 딸이다

아버지는 딸을 죽이는 대신,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지하실에서 철창을 치고, 생고기를 먹이며, 몰래 병원 약을 훔쳐오는 그의 삶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사랑이 있다. 딸은 더 이상 말도 안 통하고 사람을 공격하는 존재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딸이니까” 돌본다.

이 영화의 감동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좀비가 된 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단지 극단적인 설정이 아니라, 사회적 소외나 정신질환, 장애 등 현대 가족이 마주하는 다양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주변의 시선은 싸늘하다. 아버지가 좀비를 집에 숨겼다는 이유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이웃은 공포에 떤다. 하지만 아버지는 타인의 시선보다 “내 딸이 중요하다”는 단호한 신념을 지킨다. 결국 영화는 ‘좀비’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이 가진 무조건적인 가족애와 책임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그 사랑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성장 – 병맛 속에서도 살아 있는 인간성

‘좀비딸’은 병맛 코드가 강한 작품이다. 말 그대로 병맛의 미학이 잘 살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아버지의 변화를 통해 이 영화는 ‘부성애의 성장’을 보여준다. 처음엔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던 그는 점점 행동력을 갖추고, 감염 원인에 대한 단서를 쫓으며 사회적 부조리에 맞선다. ‘좀비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점점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시스템의 무책임함과 인간의 이기심도 꼬집는다. 감염된 이들을 거리낌 없이 제거하려는 기관, 뉴스와 공공기관이 외면하는 진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의지는 더욱 도드라진다. 어쩌면 이 영화의 진짜 좀비는 감정 없는 제도와 사회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와 딸은 극단적인 위기를 맞지만, 그 과정조차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는 단순한 결말이 아닌, “좀비 딸과 살아가는 아버지”라는 설정이 끝까지 유지되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결론: 좀비도 괜찮아, 가족이니까

영화 ‘좀비딸’은 전통적인 좀비물에서 벗어나 ‘가족’을 주제로 한 색다른 감성 드라마다. 사람을 물고, 말도 못 하는 딸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은 병맛 코드 속에서도 큰 울림을 전한다. 누구나 다르거나 이상해질 수 있는 시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더할 나위 없이 진하다.

코미디, 병맛, 사회풍자, 감동까지 모두 담은 이 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한국형 좀비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웃기지만, 마지막엔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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